"오직 절망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고 독일 철학자
아도르노 (Thedor Adorno: 1903-1969)는 말합니다.
근거없는 거짓 희망찬가에 중독된 한국 사회에
어떤 울림이 있을까요? 아름다움은 흔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희귀함에서 더욱 빛나는 선물이라고 믿습니다.
희망이라는 말은 요즈음 희귀함이 아니라
누구나 팔기에 급급한 시장의 언어가 되어버렸습니다.
희망을 팔기 전에 우리는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있도록
올바로 제대로 절망하는 하는 법을 배워야합니다.
바닥을 경험하는, 절망을 나의 이야기로 경험하는 사람만이
자기의 안전지대를 벗어날 수 있는 용기가 있습니다.
그 절망할 수 있는 용기가 정말 희귀하고 고귀하기에
성스러운 희망으로 우리를 이끌 것입니다.
눈앞에 나타난 말로만 들었던 모세와 엘리야를 보는 순간
베드로의 눈에서 수난도 죽음도 십자가도 사라졌습니다.
바로 전에 “수난과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첫번째 예고를
부인하자 예수님께 “사탄아 물러가라”고 야단을 맞았던
기억을 송두리째 잊어버린 베드로입니다 (마태오 16,21-23).
예수님의 십자가의 세례를 거치지 않는 부활은 허당입니다.
그러나 이 절망의 바닥에서 일어난 베드로 사도는 말합니다:
"이로써 우리에게는 예언자들의 말씀이 더욱 확실해졌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날이 밝아 오고 샛별이
떠오를 때까지, 어둠 속에서 비치는 불빛을 바라보듯이
그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좋습니다" (2 베드로 1,19).
넘어진 숫자만큼만 일어나면
우리는 예수님을 따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