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길:잠신潛伸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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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6.4.2023-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요한 3,16-182023-06-04 20:03
카테고리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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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6)


주님, 

당신의 가톨릭 교회는 기도의 시작과 마침을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합니다. 세가지 위격이지만 

본질은 하나이신 하느님. 셋이지만 하나이시다. 

그것이 무슨 의미인가요?

 

마틴 루터는 삼위일체교리를 이해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삼위일체를 부정하려고 하면 당신의 구원이 위험에 

처하게 되고, 삼위일체를 이해하려고 하면 정신이상자로 

몰릴 위험에 처하게 된다.”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11세기의 영국의 안셀모 성인은 ‘알기 위해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삼위일체교리에 딱 맞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이해할 수 없어도 삼위일체가 실재임을 믿을 때 

삼위일체의 의미를 알게 된다는 낙관적인 희망을 갖습니다.

 

오늘 복음은 하느님이 이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주셔서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해주었다고 말합니다(16).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행위의 가장 정점은 예수의 이 세상으로의 침투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창조의 모든 것은 무엇을 만들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인간을 향한 삼위일체의 사랑때문이었다고 

교회는 고백합니다. 또한 예수님은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신 

나머지 자신의 생명까지 바치시면서 우리를 하느님과 화해하는

 길을 마련하십니다. 그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그분은 자신의

세계를 고집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세계로 빈손과 맨몸으로 

 어린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사랑이 아니면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분의 사랑의 방식을

생각하면서, 우리의 삶의 방식이 사람에 대한 이해와 수용에 

바탕을 둔 사랑에서 비롯되는가를 질문하게 되는 대축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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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정강엽

Veroli, 이탈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