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오늘 복음은 제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을
담고 있습니다. ‘오직 이스라엘 백성 중의
길 잃은 양들을 찾아가라‘ 하시는 말씀입니다.
비행기에서 산소마스크를 써야 할 때 어린이보다
제가 먼저 마스크를 쓰라는 말이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언젠가부터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를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상기시킵니다. 이 자아에 대한
인식은 공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당신이 왜 광야에
나가 40일동안 지냈는가를 다른 측면에서 이해하게
합니다. 유혹을 이겨내는 과정은 바로 자아를
알아가는 고통의 순간이었습니다. 이 우선성의
맥락에서 왜 당신이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더냐’고 하는 질문에 베드로가 ‘하느님의 그리스도’
라고 정답을 말함에도 왜 아무에게도 말하지말라고
명령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라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선포하기 전에
제자들이 자기들이 누구인지를 먼저 아는 침묵의
기간을 가지라는 말씀이셨지 않은가요?
오늘 당신의 이방인에게 가지 말고 길잃은
이스라엘 집안에 먼저 가라는 명령은 자아를
아는 삶의 핵심으로 먼저 들어가라는 초대입니다.
삶의 순서입니다. 밖으로 (다른 민족)
나가 남을 위한 삶을 살고 예수를 알리기 전에
해야 할 일은 나의 내면에 있는 나의 집안을
(이스라엘)을 먼저 살펴보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저의 단단한 자기방어의 신발을
벗어던질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탈출기 3,5)
당신이 보시는 것은 저의 먼지 덮인 무디어진
발이 아니라 신발을 벗어내며 자비를청하는
저의 티 많은 마음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