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바티칸 뉴스]
“하느님께 있어 결코 늦은 때란 없습니다. 그분은 언제나 우리를 찾으시고 또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9월 24일 연중 제25주일 삼종기도 훈화를 통해 하느님의 관대한 은총보다 우리 자신의 재주에 더 초점을 맞추며
하느님과 “상업적인” 관계를 맺을 위험을 경고했다. 아울러 우리 인생의 모든 단계에서 우리를 부르시는 하느님의 정의를 설명했다.
하느님의 정의는 인간의 정의를 넘어서며 모든 이에게 동일한 품삯을 지불한다. 이날 성 베드로 광장에는 1만8000여 명의 신자들이 모였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전례의 복음은 우리에게 놀라운 비유를 들려줍니다. 포도밭 주인이 새벽부터 저녁까지 나가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불러 모으지만,
마지막에 한 시간만 일한 사람에게도 하루 종일 일한 일꾼과 똑같은 품삯을 준다는 이야기입니다(마태 20,1-16 참조). 우리 눈에 부당한 처사로
보일 수 있지만 이 비유는 품삯을 기준으로 읽어야 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공로를 계산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당신 자녀로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기준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나타나는 하느님의 두 가지 행동을 더 자세히 살펴봅시다. 첫째,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시려고 수시로 집을 나서십니다.’
둘째, ‘모든 이에게 동일한 “품삯”을 지불하십니다.’
첫째,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시려고 수시로 집을 나서시는’ 분입니다. 이 비유는 밭 임자가 “자기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사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섰다”(마태 20,1 참조)고 말하지만, 해가 질 때까지 하루 중 여러 시간대에 나가서 아직 일하러 가지 않은 사람들을
찾으러 다녔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비유에 나오는 일꾼들이 단순히 사람들이라는 점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하느님께서 하루 종일
지치지 않고 언제나 밖으로 찾아 나서시는 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은 바로 이런 분이십니다. 곧, 그분은 우리를 만나시는 데 있어
우리가 얼마나 노력하는지 기다리는 분이 아니시고, 우리를 찾기 전 우리의 공로를 평가하는 시험을 치르게 하지도 않으시며, 행여나 우리가
그분께 응답하는 데 늦더라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주도권을 잡으시고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사랑을 보여주시기 위해 “밖으로 나가십니다.”
그분은 하루 종일 우리를 찾으십니다.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은 하루 종일이라는 의미를 노년에 이르기까지 우리 인생의 여러 단계와 계절을
나타낸다고 풀이했습니다(「복음서에 대한 강론」, 19 참조). 그분의 마음에는 결코 늦은 때란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찾으시고 또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언제나 우리를 찾으시고 또 언제나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 그분의 마음이 한없이 크시기에 ‘하느님께서는 모든 이에게 동일한 “품삯”을 지불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품삯이란 그분의 사랑입니다.
이 비유의 궁극적인 의미가 바로 이것입니다. 곧, 마지막 시간에 와서 일한 일꾼들도 처음부터 와서 일한 일꾼들과 똑같은 품삯을 받습니다.
실로 하느님의 정의가 더 큰 정의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정의를 넘어섭니다. 인간의 정의는 “각자가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각자에게 주는 것”을 뜻하지만,
하느님의 정의는 우리의 능력, 성과 또는 실패의 척도로 사랑을 가늠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그분의 자녀이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조건 없는 사랑, 거저 주시는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때때로 우리는 하느님의 관대함과 은총보다 우리의 재주에 더 초점을 맞추면서 하느님과 “상업적인” 관계를 맺을 위험이 있습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교회로서 하루 중 시간마다 나가서 모든 이에게 팔을 벌리기보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과 똑같은 사랑으로
그들도 사랑하신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다른 이들을 멀리서 판단하면서 자신이 최고인 것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사회를 구성하는
인간관계에서도 우리가 실천하는 정의는 때때로 계산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고, 과감하게 더 나아가지 않으며, 무상으로 행한 선과 넓은 마음으로
베푸는 사랑의 효과를 기대하지 않고, 받은 만큼 주는 데 그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스스로에게 물어봅시다.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알고 있는가? 나는 모든 이에게 관대한가? 예수님께서 항상 나에게 그렇게 하셨고 또 지금도 그
렇게 하시는 것처럼 “더 많이” 이해하고 용서하는 법을 알고 있는가?
성모님, 저희가 하느님의 척도,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의 척도로 거듭나도록 도와주소서.
번역 이창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