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당신께서 저희에게 허락하셨던 2022년의 시간이 마침표를
찍고 있습니다. 당신은 언제나 시작과 처음이십니다.
올 해의 마지막 날,
우리는 요한이 전한 복음의 시작을 듣습니다.
마지막과 시작의 만남. 그렇습니다. 주님 당신이 언어가 표현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는 신비이시듯, 주님의 시간은
이렇게 마지막이 처음이고 처음이 마지막입니다.
그렇기에 당신의 시간은 언제나 하나로 이어지는 길입니다.
그 길에는 우리를 향한 ‘당신 사랑’의 시간만이 존재합니다.
그 길 위에서 우리는 ‘당신 사랑’의 시간을 살아갈 뿐입니다.
올 한해도 그 사랑의 시간속에서 머물려고 했던 저의 삶은
당신과 함께한 흔적의 증거입니다.
올 한해의 저의 화두 (話頭)는 당신을 향한 ‘그리움’이었습니
다. 당신의 모든 것이 그리웠습니다. 제가 당신을 감히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집을 나섰고 곧 길을 잃은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깨닫았습니다. 당신은 언제나 저의 길안에서 함께
하셨음을, 길을 잃은 것 같았던 시간은 오히려 당신이
저의 길을 이끄셨던 시간이었음을, 저에게 필요했던 것은
당신께 맡기는 연습이었음을. 되돌아보니 그 ‘그리움’은
당신께서 제게 주신 선물이었습니다.
그 그리움으로 채워온 한해였습니다.
당신을 그리는 저이지만 당신을 감히 찾아나서지 않아야
했습니다. 제가 당신을 찾아나서기 전에 해야 했던 것은
당신께서 저에게 오시는 것을 알아치리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이 오시는 발걸음의 박자를 알아차려야
했습니다. 제가 당신을 찾아나서는 것은 당신을 제 틀에 맞는
모습으로 구겨 넣는 것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당신은 저에게 그냥 오십니다. 저를 향한 사랑이 아니고서는 저를 지나치셨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알아 차려야 합니다.
저에게 오시는 당신의 존재의 발소리를 알아차려야 합니다.
당신을 그리워함은,
세상의 어떤 것도 당신을 향해 가는 저를 가둘 수 있는 것이
없음을 보여줍니다. 그리워함은 당신을 향해 흐르는 끊임없는
물결입니다. 그 물결을 거슬러 가기보다는
그 물결의 흐름에 몸을 실어야 합니다.
당신을 그리워함은,
당신께서 이 세상에 육화하심으로 선사하신 새로운 세계와
저와의 인연의 끈을 더 공고하게 매어두고자는 하는
갈망입니다. 그 인연의 끈은 오직 당신 안에서만
매듭을 지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을 그리워함은,
이 세상에서 제 존재의 근거는 오직 당신 뿐이라는
고백입니다. 그 고백은 오로지 당신과 저의 대화안에 형성된
구원의 공간이 됩니다. 그 구원의 공간은 저와 제가 아닌
다른 것을 녹여내는 용광로입니다.
당신을 그리워함은,
삶의 곳곳에 당신께서 뿌리신 구원의 씨앗에 대한
감사의 표현입니다. 감사는 당신의 존재를 불현듯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 알아차림은 결코 우리를
제 자리에 멈추어 있게 하지 않습니다.
당신을 그리워함은,
저의 삶의 역사에 가장 먼저 존재하는 당신이라는 ‘말씀’의
상자를 여는 열쇠를 찾는 노력입니다.
그 열쇠만이 저의 삶 속에 깊이 숨겨둔 아버지 하느님의
신비의 문을 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을 그리워함은,
당신의 삶의 역사를 제 삶안에서 복제하고픈 제 가난의
표현입니다. 제 삶은 당신 삶을 닮고자 하는 희망이 만들어낸
은총의 어설픈 모자이크이지만 그리움이 없으면 수많은
모자이크 조각이 합쳐져도 의미있는
그림을 만들어내지 않습니다.
주님, 이렇게 한해가 당신을 향한 여전한 그리움 가운데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리움 속에서 더욱 당신을 향한 배고픔을
느낍니다. 이 세상의 언어와 경험으로는 결코 채워지지 않는
허기짐이지만, 당신을 만나는 순간 그 배고픔은 뜨거운
여름 태양에 노출된 물방울처럼 순식간에 사라질 것입니다.
그 순간은 오직 당신만이 약속하신 시간이고
당신만이 주실 무상의 선물입니다.
그리워함은 당신을 향한 사랑입니다.
그리움은 당신을 목말라함입니다.
그리움은 당신을 향한 배고픔입니다.
그리워함은 당신과 함께 하는 여행입니다.
그리워함은 당신이 주신 무상의 선물입니다.
그리워함은 당신의 세계를 향한 진보입니다.
주님, 새로운 한해에도 “한 처음의 말씀”이신 당신을 향한
그리움이 깊어지게 해주소서. 당신을 향한 이 배고픔으로
제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