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을 때 그의 태 안에서 아기가 뛰놀았다.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큰 소리로 외쳤다.“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41-42) |
성모승천 대축일에 성모님은 우리에게 한가지 질문을 던지십니다: "나처럼 예수님의 삶의 처음과 끝을 함께 한 유일한 그 '한 사람'이 될 수 있는가?" 성모님이 말씀하시는 바로 그 “한 사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요? 심리학에서는 인간의 행동이 본성에 영향을 받기보다는 ‘군중’ 이라는 상황 때문에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을 ‘미끼 군중 (baiting crowd)라고 부릅니다. 예를 들어 쇼핑을 하는데 흑인이라고 함부로 응대를 하는 백인직원을 볼 때 그의 행위가 적절하지 못하다는 것을 말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천성적으로 겁쟁이거나 소심해서라기 보다는 우리 주변에 단 ‘한 사람’이 그렇게 나서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겠지요. 어느 학교에 학생이 전학왔습니다. 그런데 어떤 학생이 전학온 학생을 놀리기 시작하면 다른 학생들도 '생각없이' 그 전학온 학생을 놀리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도 미끼군중의 예가 있습니다.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한 상황이 있습니다. 단 한사람의 제자라도 유다를 붙잡았다면 유다가 밖으로 나가 예수님을 팔아넘기는 것을 제지하였을 것 아닐까요? 11명의 제자들은 과연 어느 제자가 나가서 유다를 붙잡는가를 서로 눈치 보다가 기회를 놓친 것은 아닐까요? 성모님도 그 한사람의 예입니다. 아직 유일한 한 사람이십니다. 예수님의 잉태부터 죽음의 순간에 그 단 한사람이 바로 성모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탄생과 십자가는 항상 우리에게 일어납니다. 십자가 아래의 성모님처럼 예수님과 함께 끝까지 해줄 수 있는가요?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 계신 마리아를 보여주는 요한 복음 (19,25-27)을 언급하시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모 마리아가 “항상 그의 아드님을 따르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녀를 첫 번째 제자라고 말한다”고 강조합니다.
우리가 성모님의 전구를 청하는 것은 예수님 옆에서 바로 그 한 사람으로 설수 있게 해달라는 간청을 드리는 시간이 아닌가요? 단 한사람의 동료만 있어도 인간은 강해집니다. 단 한사람이 중요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위해서 성모님처럼 바로 그 “한사람”이 되는가요? 오늘 성모님께서 하늘로 올리심을 받았다는 것은 새로운 삶의 실체로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성모님은 그분의 삶으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우리는 성모님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 태안에 잉태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에게 성모님처럼 바로 그 한 사람입니까? 이 질문에 대한 우리의 대답이 오늘 성모님이 왜 하늘에 오르셨는가를 더욱 이해하도록 도울 것입니다.
사진ⓒ정강엽 Santa Marinella, Ita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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