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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교리 교육: 악덕과 미덕 5. 인색2024-01-30 01:12
카테고리교황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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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바티칸 뉴스]

“인색은 마음의 병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1월 24일 바오로 6세 홀에서 열린 수요 일반알현을 통해 악덕과 미덕에 관한 교리 교육을 이어가며 돈에 대한 집착의 “죄”인 “인색”을 설명했다. 인색은 재물을 많이 소유한 사람이나 적게 소유한 사람 모두에게 영향을 끼친다. 

교리 교육: 악덕과 미덕 5. 인색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악덕과 미덕에 관한 교리 교육 여정을 이어갑시다. 오늘은 인간을 관대함에서 멀어지게 하는 돈에 대한 집착의 한 형태인 ‘인색’(avarizia)을 살펴보겠습니다. 

인색은 재물이 많은 사람에게만 국한되는 죄가 아닙니다. 은행 잔고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누구에게나 관련이 있는 악덕입니다. 인색은 마음의 병이지 지갑에 관한 게 아닙니다. 

사막 교부들은 이 악습이 어떻게 수도승들까지 사로잡을 수 있었는지, 그토록 막대한 유산을 포기한 이래로 고독한 독방으로 들어간 수도승들이 어떻게 가치가 거의 없는 물건에 집착하며 인색에 사로잡혔는지 분석했습니다. 수도승들은 사소한 물건에 집착하여 서로 빌려주지도 공유하지도 않았으며, 아낌없이 나누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소한 것에 대한 집착이 자유를 앗아갔습니다. 그 물건들은 그들에게 있어서 벗어날 수 없는 일종의 우상이 되었던 것이죠. 장난감을 꽉 붙들고 “이건 내 거야! 내 거야!”라고 반복하는 아이들의 상태로 퇴행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주장에는 현실과의 건강하지 않는 관계가 숨어 있습니다. 이는 저장 강박증의 형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병을 고치기 위해 수도승들은 과감하면서도 매우 효과적인 방법, 곧 죽음에 대한 묵상을 제안했습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아무리 많은 재물을 쌓더라도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바로 그 재물을 관속에 함께 가져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을 때 재물을 함께 가져갈 수 없습니다! 여기서 인색이라는 악덕의 무의미함이 드러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주인이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가 사물과 맺는 소유의 유대는 겉으로만 존재할 뿐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이 땅은 사실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땅 위에 머무르는 이방인이고 거류민일 따름입니다(레위 25,23 참조). 

이러한 단순한 성찰을 통해 우리는 인색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될 뿐만 아니라 그 근본적인 이유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쫓아내려는 시도입니다. 사실 그것은 우리가 손에 움켜쥐는 순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 같은 안전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떠올려 봅시다.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둔 그는 수확한 곡식을 모아둘 곳간을 더 크게 지을 방법을 궁리했습니다. 그 부자는 모든 것을 계산하고 미래를 위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그는 인생에서 가장 확실한 변수인 죽음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은 이렇게 말합니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루카 12,20)

다른 경우에는 도둑들이 우리를 위해 이런 수고를 덜어주기도 합니다. 복음서에는 도둑들이 여러 차례 등장합니다. 그들의 행동은 비난을 받을 수 있지만 유익한 훈계가 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 땅에서는 좀과 녹이 망가뜨리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간다. 그러므로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거기에서는 좀도 녹도 망가뜨리지 못하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오지도 못하며 훔쳐 가지도 못한다”(마태 6,19-20). 『사막 교부들의 금언집』에도 한 수도승이 잠든 틈을 타 독방에 간직하고 있던 몇 가지 물건을 훔쳐간 도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잠에서 깨어난 수도승은 그 사건에 미동도 하지 않고 도둑의 행방을 쫓기 시작했는데, 마침내 도둑을 발견하자 그는 도둑맞은 물건을 찾는 대신 자신의 독방에 남겨져 있던 몇 가지 물건을 더 건네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 물건을 가져가는 걸 깜빡하셨네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우리가 소유한 재물의 주인이 될 수 있지만, 종종 그 반대의 경우가 발생하곤 합니다. 끝끝내 재물이 우리를 소유하게 되는 것이죠. 몇몇 부자들은 더 이상 자유롭지 않고, 더 이상 쉴 시간조차 없습니다. 재물을 모으면 그것을 지키기 위해 항상 신경이 곤두서기 때문입니다. 많은 땀을 흘려 모아들인 재물이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늘 불안합니다. 부요함 그 자체가 죄라고 말하지 않고 재물을 소유하는 책임에 대해 말하는 복음의 가르침을 그들은 잊어버립니다. 하느님은 가난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만물의 주님이시지만 바오로 사도가 말한 것처럼 “그분께서는 부유하시면서도 여러분을 위해 가난하게 되시어, 여러분이 그 가난으로 부유하게 되도록 하셨습니다”(2코린 8,9). 

인색한 사람은 이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 사람은 재물로 인해 많은 이들에게 축복의 원천이 될 수 있는 반면 불행의 막다른 골목으로 빠져들 수도 있습니다. 인색한 사람의 삶은 보기 흉합니다. 저는 다른 교구에서 만난 한 형제님의 일화가 생각납니다. 그는 매우 부유한 사람이었고, 그의 어머니는 병환 중이었습니다. 그는 혼인한 사람이었고, 형제들이 돌아가면서 어머니를 돌봤습니다. 그 어머니는 매일 아침 요구르트 하나를 마셨는데, 이 사람은 요구르트를 아끼기 위해 어머니에게 아침에 요구르트를 절반만 주고 오후에 나머지 절반을 주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색입니다. 이것이 바로 재물에 대한 집착입니다. 그러다가 이 형제님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례식장 조문객들은 조소 섞인 말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결국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했네요. 모든 것을 남겨두고 떠났네요.” “아니랍니다, 모든 재물을 가져가려고 해서 관이 닫히지 않는다는데요.” 이러한 인색은 다른 이들에게서 비웃음을 삽니다. 마지막에 우리는 우리의 몸과 영혼을 주님께 드려야 하고 다른 모든 것은 이곳에 남겨 두어야 합니다. 이를 명심합시다! 우리는 너그러워야 합니다. 모든 이에게 너그럽고, 우리를 가장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너그러워야 합니다. 고맙습니다.

번역 김호열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