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공쿠르상 수상
그녀를
지키다 | 장바티스트 앙드레아 저자(글) · 정혜용 번역 | 열린책들
이탈리아의
한 외진 곳에 있는 수도원에서 수도사들이 82세의 한 노인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둘러서 있는 장면으로 이 소설은
시작합니다. 40년 동안 그 수도원에서 은거하며 살았던 그 노인을 수도사들이 ‘형제님’ 이라고 부르는 걸 보면 그는 수도사가 아닙니다. 그리고 이 수도원 지하에는 누구도 볼 수 없게 은폐된 피에타와 그 조각상에 숨겨진 신비롭고도 가슴 아픈 비밀이 있습니다.
얼마 읽지 않았는데 이런저런 궁금증으로 책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수도원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짤막짤막하게 교차시키면서 소설의 대부분은 1904-1986년쯤까지 주인공 남자가 어떤 생을 살아가고 어떤
사연을 거쳐서 이 수도원에 오게 되었는지를 펼쳐내는 이야기로 풀려나갑니다. 석공인 아버지 곁에서 시중을 들던
어머니가 태기를 느끼는 순간 ‘이 아이는 조각가가 될 거야’ 했지만,
너무나 가난하고도 힘든 직업이라는 걸 아는 아버지는 단호하게 “조각가는 안돼.
미켈란젤로 정도 되는 조각가가 되지 못할 바에는 이 직업을 갖지 않는 게 나아.” 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한 수 더 떠 아예 아이 이름을 미켈란젤로라고 짓습니다.
그리고
왜소증을 갖고 태어나 작은 키로 살아가야 할 아들에게 이런 말을 해줍니다. “선하신 하느님께서는 너를 키 크고 잘 생기고 힘세게 만들어주는 대신 키 작고 잘 생기고 힘세게 만들어 주셨다. 그러니 너의 운 역시 다를 것이다. 선하신 하느님은 운의 측면에서 더 좋은 걸 네게 마련해 주셨다.” 라고요.
‘우리
시대에 쓰인 클래식’이라 부르고 싶은 이 책은 예술가 소설이자 역사소설이자 러브스토리입니다.
그런가 하면 이 책 제목의 <그녀를 지키다>의 그녀는 누구일까, 하는 궁금증을 풀어가는 재미는 추리 소설에서 맛보는 스릴을 주기도 합니다.
게다가 서정적이면서 우아하고, 예민한 감각들이 살아있는 날카롭고 반짝이는 문장들로
문학성도 뛰어나 밑줄을 긋고 필사하고 싶은 문장들로 가득합니다.
저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어찌해볼 수 없는 조급함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주위에 알리고 싶은, 그러나
망설여지는 조급함이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책은 모두 읽어야 하는데,’ ‘어떻게 이 좋은 책을1년이나 지난 지금에야 알게 됐지,’ ‘추천한다고 요새 누가 이런 긴 장편소설을 읽을까?’ 등의 조급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소설 중간 쯤의 한 대목에서 한참을 머물면서 마침내 뜸북님들에게 꼭 소개해야겠다는 마음을 굳혔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조각가가 된 후에) 교황청의 한 주교로부터
「천국의 열쇠를 받는 성 베드로」 조각을 의뢰받고 베드로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대목이었습니다.
마리아가 한참 머물며 뜸북님들을 생각한 구절
“나의
성 베드로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수염 기른 혈색 좋은 현자가 아니었다. 그는 코르누토(바람둥이)의 이목구비를 가졌다.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를
세 번이나 부인했던 남자라면 그럴 수밖에 없듯이, 살면서 고통스러워 했으니까. (중략) 열쇠, 성 베드로는 그걸 놓쳐버렸다.
열쇠는 그것을 받으려고 벌린 베드로의 경직된 손과 땅바닥 사이 어딘가의 허공에 걸려 있었다. (중략) 하느님은 자신의 교회를 올릴 반석으로 자신의 아들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남자를 골랐다.
죄인을. 만약 코르누토가 천국의 열쇠를 받았더라면 그는 너무 놀라서 열쇠를 놓쳤을
거라고 상상했다. 내가 창조한 성 베드로는 법열에 빠진 성인, 이제
은퇴한 건강하고, 권태로 가득한 종교인이 아니라, 자신의 임무 앞에서,
그의 늙은 두 손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물건 앞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데 안 그래도 그 두 손은 그걸 막 놓쳐 버렸다.
어쩌면 그는 혹시 열쇠가 깨지는 건 아닐까, 자신이 벼락을 맞는 건 아닐까 자문할지도
몰랐고, 그러면서 공포에 질려 열쇠가 떨어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334-3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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